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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by 홀뮤비의 역사공부 2023. 12. 21.

1. 무단통치기(1910~1919)

1) 행정기구

조선총독부 설치(식민통치 최고 기구로 현역 육군 또는 해군 대장 가운데 총독으로 임명)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 군통수권

중추원 설치(총독의 자문 기관, 역사왜곡, 식민사관) 친일 매국노들로 구성

2) 정치사회

헌병경찰(헌병이 경찰업무 담당, 조선인 일상생활 통제)

칼찬교사(위압적 분위기 조성)

태형(조선인만)

즉결처분(조선인 정식 재판없이 처벌 가능)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없음(한국인 발행 신문 폐간, 역사서, 잡지 출판금지, 정치 단체, 학회 해산)

우민화 교육(보통학교 조선인 4, 일본인 6 - 우민화 정책)

민족교육탄압(사립학교탄압)

3) 경제수탈

토지조사사업(일본의 재정 확보, 신고제, 증거제,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확립, 경작권 인정 안 함, 계약제) 미신고 토지, 국유지, 공유지를 국유지로 편입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나 일본인 지주에게 판매

회사령공포(허가제를 통해 조선인에게 불이익)

자원독점(어업령, 삼림령, 조선령, 광업령)어장 및 광산 개발권은 일본인 차지

기간 시설(철도, 도로, 항만 등) 정비를 통해 식량이나 자원을 일본으로 가져감

4) 국내외 독립운동

. 국내 독립운동 :

- 비밀결사단 신민회(서울, 공화정 지향)

- 대한독립의군부(전 낙안군수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유림을 주축으로 조직, 복벽주의-왕정복구) 국권반환요구서를 보내려다 발각되어 해산

- 대한광복회(군대식 조직) : 영주 유림 채기중이 결성한 대한광복단으로 박상진, 김좌진이 참여하여 대한광복회로 발전, 공화정 지향, 친일부호 처단, 만주사관학교 설립)

- 3.1운동(고종 인산일) 도시에서 농촌으로 확산 되면서 폭력투쟁으로 전개, 만주, 연해주, 미주, 일본까지 확산, 일제는 무차별 탄압(제암리 학살사건),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불복종운동 등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에 영향,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계기

. 국외 독립운동 :

- 서간도 : 평안도와 함경도 등 국경지역의 농민들이 삼원보로 이주해 한인사회를 형성, 이회영, 이시영이 설립한 자치기관인 경학사-부민단-한족회(상해임시정부와 연합하여 서로 군정서로 개편, 신흥강습소는 신흥무관학교 발전(독립군 간부양성), 1920년대 참의부, 정의부가 활동, 1930년대 조선혁명군(양세봉, 중국의용군과 연합작전) 영릉가, 흥경성 전투

- 북간도(용정, 명동에 독립군 기지) : 19세기 후반 한민족이 이주 시작, 1910년대 자치조직인 간민회, 서전서숙(용정, 이상설), 명동학교(명동, 김약연) 등 민족학교 설립, 중광단(왕청, 대종교) 조직 이후 김좌진을 중심으로 북로군정서로 개편, 1920년대 봉오동전투, 청산리 대첩 일제의 보복 만행으로 간도 참변 발생,

- 연해주 : 러시아가 개척을 위해 한인 이주 허용 신한촌(블라디보스토크) 형성, 1910년 유인석이 13도군을 만들어 연해주 의병 통합체 설립, 권업회가 조직되어 군사 학교인 한민학교와 대전학교 설립, 1919년 대한국민의회(최초 임시정부 설립) 이후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로 통합,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미주지역 : 하와이에서 신민회-국민회-한인국민회-대한인국민회(박용만과 이승만, 신한민보 발행, 성금모금 임시정부에 전달), 박용만 군사훈련 실시를 위한 대조선국민군단설립, 국내조직으로 조선 국민회, 신민회 해산 후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에 흥사단 조직, 국내 지부로 수양 동우회

중국 : 상하이, 신한청년단(파리강화회의 김규식 파견)

멕시코 : 에네켄(애니깽), 숭무학교

일본 : 조선청년독립당(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발표-3.1운동에 영향, 독립선언)

2. (소위) 문화통치기(1920~1931년)

1) 행정기구

조선총독부에 문관 출신 가능(한번도임명 안됨)

자치기구 도평의회, 부면협의회 설치(대부분 일본인)

조선사 편수회(역사왜곡)

경성 제국 대학 설립(한국인 대학 설립 억압으로 일본이 설치, 서울대학교의 전신)

2) 정치사회

보통경찰(경찰수 증가)변경 하였으나 치안유지법 제정을 통해 탄압 강화

태형령폐지

치안유지법 실시(사회주의자 토벌)

언론사-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검열, 정간, 통제)

2차 교육령(학제통일 6년 교육)

3) 경제수탈

산미증식계획(개간 비용은 농민에게 전가, 증가량보다 수탈량이 많아 조선인은 만주에서 잡곡 수입해 먹음)

쌀의 단작화와 상품화 현상 발생

회사령(신고제)

무관세(물산장려운동의 배경) - 일본 상품유입으로 조선인 기업 타격

4) 국내외 독립운동 :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 민족주의 진영은 실력양성 운동 일환으로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전개

- 사회주의 진영은 농민운동과 노동운동 전개

- 이후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자치론자(일제 식민통치를 인정하고 일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치권을 얻자는 주장)와 비타협민족주의(자치론자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진영), 사회주의자

- 국내 :

. 6.10 만세운동(1926, 학생이 주역) 전국시위로 확대되지 못함. 준비과정에서 조선공산당 등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등 민족주의 계열이 연대하여 민족유일당을 결성하는 공감대 마련.

. 정우회선언(1926.11.) 운동의 통일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 조선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상단체.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6·10 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대규모 검거 사건. 정우회도 이 과정에서 사실상 활동이 정지. 이후 새롭게 정비된 정우회는 1926 11월에 정우회 선언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정치투쟁을 강조, 민족주의 세력과의 제휴-사회주의자들이 신간회 등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

. 신간회(1927) 중국의 제1차 국공합작의 영향으로 한국 독립 유일당 북경 촉성회 결성, 3부 통합 운동 전개, 문화통치 영향으로 민족주의 진영 분열과 자치론 등장,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세력과 연합 추구, 결성, 일제하 최대 규모 합법적 항일운동 단체, 강연회 개최, 각종 사회 운동과 노동, 농민운동 지원

. 광주 학생 항일 운동(신간회 진상조사단 파견, 이후 해소) 광주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충돌, 일제 경찰의 편파적 대응, 대규모 반일 학생 시위, 일제의 민족차별 중지 및 식민지 교육철폐 요구, 신간회의 지원으로 전국확산, 3.1 운동 이후 최대규모의 민족운동

- 물산 장려 운동(1920, 평양 조만식): 국산품애용 운동전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나 일제 탄압 및 자본가와 상인의 이익만 우선시한다는 비판 등으로 약화

- 여성운동(근우회) 여성교육확대, 여성노동자 임금 차별 철폐

-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 상영

- 형평 운동(1923, 백정들이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 결성)

- 소년운동 : 천도교 소년회, 잡지 어린이 발행(방전환)

- 청년운동(조선청년총동맹)

- 조선어연구회(한글잡지창간, 가갸날 제정)

- 민족주의 실력 양성운동

- 민립대학 설립운동 : 조선교육회(이상재) 제안으로 민족의 힘으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고자 함. 일제의 탄압 및 가뭄과 수해로 실패하였으나 불만을 무마할 목적으로 1924년 경성제국대학 설립 

- 문자보급운동(조선일보 주도)으로 한글 교재 보급, 전국순회강연

- 브나로드 운동(동아일보 주도) 1931년부터 학생계몽대 조직, 한글 교육(야학), 미신타파, 구습 제거, 근검절약 등 농촌 계몽 활동 전개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

- 사회주의 암태도 소작 쟁의(1923, 1년간 싸워 소작료 인하), 원산 노동자 총파업(1931, 일본과 프랑스 노동단체로부터 격려 전문을 받음)

- 사회주의 운동 세력 등장 : 3.1 운동 이후 청년,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확산, 농민, 노동자 단체가 사회주의 단체 결성, 비밀리에 조선공산당 결성(1925), 일제가 치안 유지법을 공포하여 탄압, 민족주의 운동(지주, 자본가 중심)과도 갈등, 일제의 탄압을 극복하고 항일 투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 추구

- 국외 : 독립운동 기지

. 의열단의 항일 의거: 1919년 김원봉이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청년들이 모여 조직,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1923), 조선총독부 고위관리 처단, 관공서 파괴, 김익상, 김상옥, 나석주, 김지섭 등 활동, 조직적 무장 투쟁 전개 노력, 황푸군관학교 입학(군사훈련), 중국 국민당 지원으로 조선혁명간부학교설립. 중국 관내 항일단체와 정당을 통합한 민족혁명당 결성에 주도적 역할, 조선의용대에 대거 가입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함.

. 봉오동전투(1920.6.) 대한독립군(홍범도)+국민회군(안무)+군무도독부군(최진동) 민족주의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로 대승을 거둠.

. 청산리 대첩(1920.10.)북로군정서(김좌진)+대한독립군(홍범도) 연합부대 승리

. 간도참변(1920)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이 한국인 마을 습격 및 무차별 학살, 더 이상 간도 지역에 있기 힘든 상황, 만주지역 각 독립 부대는 대규모 일본군과 맞설 통합 부대의 필요성으로 러시아와 만주의 국경지대인 밀산으로 이동 후 총재 서일이 대한독립군단 조직

. 자유시참변(1921) 적색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하였고, 적색군을 도와 내전에 참전하였다. 그러나 적색군은 내전에 승리한 후 독립군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려 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독립군을 공격함으로써 무수한 사상자를 낸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야기하였다.

. 3부 결성(참의부-임시정부 직속으로 압록강 주변에서 활동, 정의부-하얼빈이남 남만주, 신민부-자유시 참변 이후 귀환한 독립군 중심, 북만주), 자유시 참변으로 만주로 돌아온 독립군과 처음부터 이동하지 않았던 독립군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뭉치려 했으나 쉽지 않아 세 개로 분할. 일제 탄압 및 사회주의자들의 해체 주장으로 해체. 3부를 통합하지 못하였지만 독립운동 세력은 남만주 지역의 국민부(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북만주 지역의 혁신의회(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로 통합. 공산주의적 자치정부

. 미쓰야협정(1925) 한국인이 무기를 가지고 다니거나 한국으로 침입하는 것을 엄금, 만주에 한인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장해제하며 무기와 탄약 몰수, 일본이 지명하는 독립운동 지도자를 체포하여 일본 경찰에 인도. 독립군 활동이 위촉

3. 민족말살통치기(1931~1945)

1) 행정기구

청구 학회(역사왜곡)

2) 정치사회

황국 식민화 정책(창씨개명, 황국신민서 암송, 궁성 요배, 신사참배)

3, 4차 조선 교육령 시행 : 조선어 사용 금지(조선어학회 사건)

국민학교로 변경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 폐간

사상범 보호 관찰령(1936)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1941)

3) 경제약탈

농촌진흥운동(춘궁 퇴치, 근검절약, 미신 타파 등을 목표로 전개된 운동이며, 전통적인 계 중심의 농촌을 면 중심의 행정적인 체제로 재편하고, 식민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농민의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면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정책-조선총독부 주도 운동)

남면북양 정책(남부지역 면화, 북부지역 양 사육 강요)

병참 기지화 정책(전쟁에 필요한 자원 보급의 기지, 지원병제, 근로보국대, 학도병제, 공출, 배급제)

국가총동원법(1938)-징용령(1939)-징병제(1944)-여자정신근로령(1944)

 

4) 국내외 독립운동

- 국내 :

민족주의 사학(정인보)

식증주의 사학(이병도-진단학회)

화회경제 사학(백남운-유물사관, 발전, 법칙, 보편, 일제의 정체성론 비판)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농촌계몽운동)

 

- 국외 : 한중연합작전

. 한인애국단(1931) 임시 정부의 극심한 침체 상황 지속, 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으로 중국인의 반한 감정 고조, 김구가 상하이에서 조직하여 의열 투쟁 전개, 이봉창, 윤봉길 의거(1932), 윤봉길의거를 계기로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상하이에서 충칭에 정착할 때까지 각지로 이동

. 한중연합

북만주 - 혁신의회>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지청천, 쌍성보전투, 재전자령전투)+중국호로군

남만주 -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양세봉, 영릉가전투, 싱징성전투)+중국 의용군

. 조선의용대(1938):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무장부대(조선민족전선연맹, 김원봉), 일시적으로 중국 팔로군에 편입

 

 한글연구

조선광문회(1910): 최남선, 박은식이 조직

조선어연구회(1921): 가갸날 제정(1926), 잡지 한글 창간(1927)

조선어학회(1931): 맞춤법 통일안, 표준어 제정, 광복 후 우리말 큰사전 제작, 조선어학회사건(1942)으로 강제해산 및 간부 고문

 한국사연구

민족주의 사학  신채호(독사신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을지문덕전 아와 비아의 투쟁), 박은식(민족혼,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유교구신론)

사회 경제사학 - 백남운(조선봉선사회경제사, 우리 역사는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쳤다. 정체성론 극복)

조선학 운동 - 문일평(조선심, 한글중요), 정인보(, 광개토대왕릉비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