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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1점(그냥 떠먹는) 선사시대와 고조선

by 홀뮤비의 역사공부 2023. 11. 3.

1. 선사시대

1-1. 구석기시대(70만년전 - 1만년전)

  • 특징: 오랜시간 시간이 지나면서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로 구분된다. 구석기와 중석기의 가장큰 특징은 기후 변화에 따른 도구의 변화이다. 사냥과 채집을 통한 이동 생활, 불 사용, 혈연 중심의 평등 사회, 동굴이나 막집, 바위그늘에서 생활, 주로 돌로 만든 뗀석기 사용
  • 사냥용 뗀석기: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팔매돌, 슴베찌르개(구석기 후기에서 중석기)
  • 요리용 뗀석기: 긁개, 밀개, 뼈 도구
  • 중석기 뗀석기: 잔석기(화살촉)
  • 유적지: 경기도 연천 전곡리(아시아 최초 아슐리안계 주먹도끼), 평남 상원 검은모루동굴(동물화석, 주먹도끼), 충남 공주 석장리(남 최초 구석기 유적),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어린아이-흥수아이 유골), 경기도 남양주 호평, 충북 단양 수양개(70만년전 유물-가장오래됨), 북한 웅기군 굴포리(중석기 유물) 등

1-2. 신석기시대(8000년전 - )

  • 특징: 신석기 혁명인 원시적 농경(조, 피, 수수 재배) 시작과 목축 시작으로 강가나 바닷가 주변에 정착 생활 시작. 농경이 시작되었지만 수렵과 채집이 매인
  • 농경이 시작으로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영혼.조상 숭배
  • 도구 석기를 갈아만든 간석기 사용
  • 경작용(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돌화살
  • 수확물을 담거나 조리를 위한 토기 : 이른 민무늬 토기(최초)-덧무늬 토기-눌러찍기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
  • 주거 : 움집(땅을 파고 기둥을 세운 반지하형 가옥, 중앙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
  •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 중심의 부족 사회(씨족별 대략 20~30명씩)
  • 족외혼(혼인 상대자를 다른 집단에서 찾는것), 평등 사회, 원시적 수공업
  • 실을 만드는 도구(가락바퀴, 뼈바늘)
  • 조개껍데기 예술 품,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 등
  • 유적: 제주 한경 고산리(눌러찍기무늬 토기, 최초 신석기 유적), 서울 강동 암사동(원형의 집터, 빗살무늬 토기), 강원 양양 오산리(흙으로 구운 사람 얼굴), 부산 영도 동삼동(조개무지, 흑요석기), 황해 봉산 지탑리(탄화된 좁쌀발견, 농경) 등

2. 국가 출현(청동기, 철기시대)

2-1.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년 전 ~), 고조선(기원전 2333)

  • 특징: 벼농사 시작(잉여 생산물) 했지만 밭농사(조, 피, 수수, 보리, 콩) 매인
  • 사유재산 발생으로 계급 출현
  • 농기구로 간석기(반달 돌칼, 바퀴날 도끼, 홈자귀, 간돌검 등) 사용
  • 청동기로는 비파형 동검(무기, 의식용-정복활동), 거친무늬 거울(장신구)
  • 토기 변화(덧띠새김무늬 토기-민무늬 토기-미송리식 토기(손잡이有)-붉은 간 토기
  • 움집은 점차 직사각형 모형에 지상화로 변화했고, 화덕은 한쪽 벽으로 이동
  • 계급에 따라 크기가 다른 지배층 무덤인 고인돌(탁자식-북방식, 바둑판식, 개석식), 돌널(관)무덤, 돌무지 무덤

 

2-2. 철기 시대(기원전 400년 전 ~)

  • 특징: 무기의 발달, 농기구 발달, 왕이 통치하는 연맹국가(연맹왕국) 출현, 세형 동검(의식용 도구)과 잔무늬 거울 등
  • 철제 농기구와 철제 무기 사용으로 농업 생산력과 정복 활동이 나타남
  • 토기: 민무늬 토기(청동기 시대~)-덧띠 토기-검은 간 토기
  • 주거: 지상식 주거가 일반화되고, 부뚜막(온돌 사용) 등장
  • 명도전, 반량전, 오수전 등 중국 화폐 사용 - 중국과 경제 교역
  •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 '붓' - 한자 사용

2-3. 고조선(BC 20세기)

  • 기원전 2333년 건국
  • 단군(제사장, 무당) + 왕검(정치적 지도자, 무리의 우두머리) = 제정일치(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절대자) 사회
  • 중심지는 초기 중국의 요령 지역
  • 세력범위: 비파형 동검, 거친 무늬 거울, 북방식 고인돌(탁자식), 미송리식 토기

2-4. 고조선(BC 4~2세기)

  • 왕(王)호 사용, 대부. 박사. 장군 등 관직 명칭 사용했다. 기원전 4C말~3C초 요서를 경계로 연나라와 대립할 정도로 강성했으나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략으로 서쪽 2000리 영토를 상실하고 고조선의 중심지가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
  • 왕위 부자 세습(아버지인 부왕에서 아들인 준왕)할 정도로 강성 했다. 기원전 2세기 위만은 중국 진나라, 한나라 교체기 무렵에 고조선으로 망명하였고 준왕은 위만을 국경수비대장인 박사로 임명함. 이때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 내고 위만 조선을 세움(B.C. 194)
  • 위만 조선을 세운 후에도 '조선'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 기존의 관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중앙정치 조직을 갖춘 강력한 국가로 성장. 주변 지역인 진번, 임둔 등을 복속시켜 영토를 확장하였고 철기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수공업이 발달하면서, 상업.무역을 발달 시켰다.
  • 한나라, 예나라, 진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이득을 독점하였고 한나라 반발로 기원전 108년 우거왕 때 고조선과 흉노의 연합을 우려한 '한'무제의 침략으로 고조선은 멸망(1차 침략 때 패수에서 승리, 이후 내분으로 멸망)
  • 한나라는 고조선의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낙랑, 임둔, 진번, 현도 등 네 개의 군 설치 후 관리를 보냄(한군현 or 한사군).
  • 8 조법(고조선의 지배층의 재산 보호 목적으로 유지되던 법)을 60여 조로 강화하면서 간섭이 심화됨. 8 조법내용으로는 살인하면 사형, 상해하면 곡식으로 배상, 절도 시 노비가 되거나 50만 전으로 배상

2-5. 고조선에 대한 기록

  • 고려 충렬왕 때 일연(1281, 삼국유사) 최초로 단군 기록, 이승휴(1287, 제왕운기) 기록
  • 조선 시대에는「세종실록지리지」,「응제시주」(세조, 권람),「동국여지승람」(성종, 노사신), 「동국통감」(성종, 서거정)에 단군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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