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1392)
태조(1392 ~ 1398)
- 체제정비 : 한양천도(1394) : 경복궁, 4대문 건립, 정도(재상중심의 정치)전이 기본계획 수립
- 문물제도 : 조선 경국전, 불씨잡변, 경세문감, 삼봉집, 고려국사
- 경제육전(조준), 천상열차분야지도(천문관련그림, 권근)
- 대외관계 : 표전(외교문서)문제로 명과 관계 악화
- 요동정벌 시도 : 1차 왕자의 난(1398) 정도전, 방번, 방석 사망
정종(1938 ~ 1400)
2차 왕자의 난(1400) 방간, 박포와 방원과의 싸움
왕권강화
태종(1400 ~1418)
체제정비 및 공신숙청 :
- 6조직계제(왕중심): 6조 장관인 판서가 국왕에게 직접 보고
- 사간원 독립(대신견제)
- 사병혁파(공신숙청), 사원철폐
- 창덕궁 건립
경제와 사회(고려말 모순 해결) :
- 호패법, 양전 : 토지, 인구 파악
- 신문고 설치
- 저화(지폐)
문물제도 :
- 요동정벌 보류
- 서얼차대법(한품서용), 재가 금지법
- 주자소(조선 최초의 금속활자) 설치
- 계미자 주조
- 혼일강리역대국도(동양최고 지도)
명과의 관계개선
- 요동절벌 포기
- 처음으로 책봉 받음
체제정비
세종(1418~1450)
체제정비(유교정치 이념)
- 의정부서사제(왕권과 신권의 조화)
- 집현전(경연, 서연) - 학문연구, 정책자문
- 청백리 재상, 널리 인재등용(장영실)
경제와 사회(애민정치)
- 공법(1결당 20-4두)
- 조선통보
- 사형수 삼심제
- 여자 종 출산 휴가 연장
- 백정층 확대
문물제도
- 삼강행실도-효행록, 주자가례
-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 팔도도-신찬팔도지리지, 총통등록
- 칠정산, 치평요람, 해동제국기(신숙주)
- 혼의-간의-자격루-앙부일구
- 한글창제,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 정간보-아악보(박연)-여민락, 갑인자
- 몽유도원도(안견), 수문-문청
대외관계
- 4군6진 개척(현재의 영토) 최윤덕, 김종서(태종 5년 문과에 급제함, 세종 17년 함길도 병마도절제사에 임명됨, 문종 2년 고려사절요를 찬술함, 단종 1년 계유정난 때 살해됨.67회 기출, 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개척하였다.
- 삼포개항(계해약조) 통신사 : 부산포, 제포, 염포
- 대마도 토벌(이종무)
문종(1450~1452)
- 고려사(기전체)
- 고려사절요(편년체) 편찬
단종(1452~1455)
- 김종서, 황보인 등 정승들의 실권 장악
- 세종실록지리지
- 계유정난(좌익공신)으로 김종서, 황보인 사망
왕권강화
세조(1455~1468)
체제정비 :
- 6조직계제 부활
- 집현전 경연 폐지
- 5위제-진-보설치
- 진관체제
- 직전법
사회와 경제 :
- 직전법(현직만 지급)
- 호패법, 호적(보법 실시)
- 팔방통보
문물제도 :
- 경국대전 편찬시작
- 간경도감(월인석보 간행 - 한글)
- 원각사 10층 석탑
- 동국지도(인지의)
- 사시찬요
예종(1468~1469)
- 남이의 옥
체제정비
성종(1469~1494)
체제정비(유교정치 이념) :
- 홍문관 설치(경연 발달), 유향소 부활
- 사림(김종직) 진출 : 3사언관 강화, 훈구비판
우부승지 김종직이 아뢰기를, "고려 태조는 여러 고을에 영(令)을 내려 공변되고 청렴한 선비를 뽑아서 향리(鄕吏)들의 불법을 규찰하게 하였으므로 간사한 아전[奸吏]이 저절로 없어졌는데, 5백년 간의 풍화(風化)를 유지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이시애(李施愛)의 난리 후부터 유향소(留鄕所)458) 가 혁파되자 간악한 아전들이 불의를 자행하여서 건국한 지 1백 년도 못되어 풍속이 쇠퇴해졌습니다. 열 집이 사는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이 있다고 하는데, 한 고을이 아무리 적다 하나 어찌 한 고을의 착한 선비가 없겠습니까? 청컨대 다시 유향소를 설립하여 향풍(鄕風)을 규찰하게 하소서."
"성종실록"67회 기출, 세조대 이시애 난으로 혁파된 유향소가 성종대 김종직의 건의로 복설됨. 유향소는 향리 규찰과 풍속교화를 목적으로 만든 지방자치기구로 좌수와 별감을 중심으로 운영
경제와 사회(민본과 유교이념) :
- 관수관급제(관에서 거줘 관에서 지급)
- 2대악법(재가금지법, 서얼차대법)
문물제도 완성 :
- 경국대전 반포
- 동국통감(서거정 등)
- 동국여지승람
- 국조오례의, 악학궤범
- 동문선, 해동제국기(신숙주)
연산군(1494~1506)
- 언론탄압과 언문금지령
- 경연과 신문고 폐지
- 신언패(관리들에게 말을 삼가도록 하기 위해 목에 걸게 한 패
최초사화 발생
- 무오사화(1498) 사림 세력의 언론 활동을 자신들의 책임과 권한을 넘어서서 임금을 능멸하는 것으로 규정
- 갑자사화(1504) 폐비윤씨 사건으로 훈구파와 사림파 제거
사림들의 등장
중종(1506~1544)
중종반정(훈구파 주도)
- 사림 재등장 : 조광조의 개혁정치
- 도학정치(지치주의), 예차예학 강조
- 경연, 언론 활성화
- 현량과 설치, 전랑권 형성
- 소학, 주자가례 보급, 향약 보급
- 소격서 쳬지, 방남의 폐단 시정요구
- 위훈삭제 사건으로 기묘사화(1519, 조광조)
- 백운동 서운(풍기군수 주세붕) 안향 봉사, 최초의 서원
- 이륜행실도, 동몽수지 간행
- 삼포왜란-비변사(최초설치 임시기구), 임신약조
명종(1545~1567)
- 문정황후 수렴청정
- 을사사화(1545) : 윤임(대윤), 윤원형(소윤) 외척간 갈등
- 양재역 벽서사건(정미사화)
- 승과 부활(보우)
- 직전법 폐지(지주전호제 확산)
- 방납의 폐단 극심해서 구활촬요(각종 식물로부터 음식 재료를 구하는 법과 환자를 구완하는 각종 방법이 수록)
- 임꺽정의 난(양주출신 백정)
- 사림들의 활동: 소수서원(이황) 최초의 사액서원
- 을묘왜변(1555) 비변사 상설화, 제승방약체제( 전쟁 혹은 변란이 일어났을 때 각 지역의 수령이 소속 군사를 이끌고 거점 지역으로 이동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장수의 지휘를 받는 군사 전략), 국교 일시단절
선조(1567~1608)
붕당의 출현(사림파의 분열)
- 동서분당 : 서인은 이이, 성혼(成渾)의 학문을 계승하며 경기,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동인은 이황, 조식의 학통을 이어받으며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세력
- 이조전랑직 다툼(1575)으로 김효원이 과거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이조전랑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가 윤원형의 문객이었다하여 심의겸(서인)이 반대. 그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장원급제하여 전랑으로 천거 되었으나 외척이라하여 김효원(동인)이 반대.
-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 1589) :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약 3년간 정여립과 연루된 1,000명의 동인이 희생된 사건이다(서인 정철이 동인 탄압)
- 정철 건저의 사건 : 정철은 세자 책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관료들과 협의하였으나, 이산해와 김공량의 결탁으로 회피되었다. 이산해는 이 사실을 인빈에게 알렸고, 정철은 선조의 노여움을 받아 관직이 삭탈되었다. 최영경이 복직되어 동인 정권이 수립되었다.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갈라져 대립
경제와 사회
- 수미법 주장(이이, 유성룡)
- 납속 공명첩(신분문란 야기)
임진왜란(1592~1598)
-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왜군 700여 척이 부산포를 함락, 동래진 함락 송상현 전사, 이일 상주에서 패전, 신립 충주 탄금대에서 패전. 충주에서 신립 패전 소식 한양에 전해져 선조 피난(한양 함락)
- 이순신 옥포해전 첫승,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 광해군 분조, 평양성 함락, 이순신 한산도에서 대승, 금산전투(700명 장렬히 전사)
- 김시민 진주성에서 왜군 격퇴(육지에서 첫승)
- 명나라 제독 이여송이 명군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남하
- 1593년: 평양성 탈환, 벽제관 전투 패배(명나라 돌아감), 행주대첩 승리, 한양 수복, 누르하치 동만주 통일
- 2차 진주성 전투 - 왜적에게 함락, 성수경, 김천일, 최경회, 황진, 고종후 등 전사
- 선조 도성으로 환궁
- 평안도 도제찰사 류성룡, 도원수 김명원이 이끄는 관군이 명 제독 이여송 부대에 합세하여 평양성을 되찾았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의 불량기포를 비롯한 화포가 위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은 크게 패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전투의 승리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것으로 기대된다. 67회 기출, 이후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
- 1594년: 훈련도감 설치
- 김응서 고니시 유키나가와 만나 강화 논의
- 1596년: 이몽학의 난
- 심유경 고니시 유키나가와 왜국으로 건너감. 고니시 유키나가 부산으로 돌아옴. 왜군 서생포, 죽도 등 진영 철수.
- 1597년: 정유재란 발발
-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시 침략하여 정유재란 발발. 이순신 하옥, 원균 경상우수사 겸 통제사 됨. 원균 칠천도 크게 패전하고 전사.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 이순신 명량해전에서 왜의 수군 크게 격파.
- 1598년: 명나라 군대 울산성 총공격 했으나 패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왜군 울산, 사천, 순천 철수
- 이순신 명나라 수군 협동하여 고니시 유키나가 퇴로 차단. 이순신 노량해전에서 왜의 수군 크게 격파 후 전사. 모든 왜군 철수하여 왜란 종료
광해군(1608~1623)
- 임진왜란때 분조를 이끎
- 임진왜란 중 조식문하에서 의병장 많이 배출 북인집권
- 선조 임란 후 9년 재위 하면서 소북 vs 대북 갈등 야기
체제정비(전후 복구)
- 양전사업(토지조사사업)
- 동의보감(허준), 홍길동전(허균)
- 대동법(경기도에 처음 실시) : 조선의 세금 징수는 토지(전세), 노동력제공(역), 특산물(공납)이었고 집집마다 징수하였으나 대동법 시행으로 토지를 가진사람만 세금을 부과하는것으로 바뀜
- 경덕궁 건설(경희궁, 인조의 사가 터)
- 교하(파주) 천도 시도
광해군과 대북파의 강경정책
- 5현 문묘종사와 회퇴변척
- 계축옥사(영창대군, 임해군살해)
대외정세
- 후금건국으로 명과의 전쟁(1618), 실리적 중립외교
- 명의 요청으로 감홍립파병(후금에 투항) 대명의리 배반
- 기유약조(1609)-부산포개항
인조(1623~1649)
- 인조반정(서인주도 남인참여, 1623)
- 이괄의 난(1624) 잔당 후금 투항
- 친명배금정책과 호란(실리보다 명분)
- 정묘호란(후금, 1627)광해군을 위해 보복 형제관계, 인조 강화도로 피난
- 병자호란(청, 1636-37)군신관계 요구, 인조 남한산성에 갇힘(주전파 vs 주화파)
- 어영청, 수어청, 총융청
- 영정법, 상평통보
- 정두원(천리경, 자명종)
- 침구경험방(허임)
효종(1649~1659)
- 북벌운동-나선정벌
- 농가집성(신속)
- 베델(박연)
현종(1659~1674)
- 예송논쟁(기해, 갑인)
숙종(1647~1720)
- 탕평책 시작, 환국(경신, 기사, 갑술)
- 금위영
- 백두산정계비
- 울릉도(안용복)
- 윤휴(사문난적)
- 색경(박세당), 산림경제(홍만선)
영조(1724~1776)
- 이인좌의 난, 나주괘서 사건
- 완탕평책(비-파-채)
- 균역법, 속대전, 서원정리(산림부정)
- 이조전랑의 권한 축소
- 노비종모법(일천즉천)
- 신문고 부활, 청계천 정비
- 사형수 삼심제, 무원록
- 동국문헌비고(영·정조)
- 훈민정음운해·강계고⟹신경준
- 택리지(이중환)
- 동국지도(정상기)-최초 100리 척 지도
- 성호사설(이익)
정조(1776~1800)
- 준탕평책, 대전통편,
- 규장각(초계문신제), 장용영
- 수원화성(시흥환어행렬도)
- 수령권환 강화(향약 주관)
- 문체반정(노론견제), 신해통공
- 신해박해(추조적발 사건),
- 홍재전서(정조의 시문집)
- 일성록, 무예보도통지
- 청장관전서·규장전운(한자운서)⟹이덕무 ㆍ동문휘고, 탁지지(호조), 추관지(형조)
- 마괴회통(정약용)
순조(1800~1834)
- 안동김씨(시파)
- 신유박해, 홍경래의 난
- 공노비 해방(6만 여명)
- 임원경제지
헌종(1834~1849)
- 풍양조씨(벽파)
- 기해박해
-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철종(1849~1863)
- 안동김씨(시파)
- 임술민란(진주)
- 대동여지도(10리 방점, 목판, 분철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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