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10 ~ 11C) ; 호족의 시대(문벌귀족)
태조(왕건 918~943)
고려건국(918)
- 농민생활 안정책: 호족의 과도한 수취 금지→세율을 수확량의 1/10으로 경감[취민유도]
- 관제정비 : 태봉관제+신라, 중국제도 참고, 개국공신, 지방호족→관리등용
- 호족세력 회유책: 정략결혼 및 관리등용, 사성정책, 역분전지급(공로에 따라), 재지관반(지방자치권인정-호족)
- 호족세력 강경책: 기인제도, 사심관제도
- 정책방향제시: 정계와 계백료서[신하들의 국왕에 대한 도리 현존안함] , 훈요 10조[후대왕의 정책방향 제시]
- 북진정책: 고구려 계승의식, 서경 개발→영토 확장(청천강~영흥)
- 만부교사건(942): 거란배척
- 숭불정책: 연등회, 팔관회 중시
※ 독자적 연호 :
- 고구려: 광개토대왕(영락)
- 신라: 법흥왕(건원), 진흥왕(개국, 대창, 홍제), 진평왕(건복), 선덕여왕(인평), 진덕여왕(태화)
- 통일신라: 김헌창의난(경운)
- 발해: 고왕(천통), 무왕(인안), 문왕(대흥, 보력), 성왕(중흥), 선왕(건흥), 대인선(청태)
- 고려: 태조(천수), 광종(광덕, 준풍), 묘청(천개)
- 개항기: 개국(1차 갑오개혁), 건양(을미개혁)
- 대한제국: 고종(광무), 순종(융희)
혜종(943~945)
왕규의 난 : 왕건의 사촌인 왕식렴과 왕요(정종)가 진압
정종(945~949)
- 왕식렴의 근거지인 서경으로 천도를 계획 했으나 실패
- 최광윤의 보고에 따라 거란 침입에 대비해 광군(농민으로 구성) 30만을 청천강 유역에 배치
- 개경에 통수부로 광군사 설치
광종(949~975)
- 왕자와 외척사이의 왕위계승다툼(왕규의 난)으로 왕권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즉위
- 노비안검법, 주현공부법(호족세력 경제 기반약화, 국가수입 기반확대, 민생안정)
- 과거제도 : 후주출신 쌍기(영입) 건의로 실시, 신진인사등용, 신구세력교체
- 4색 공복제(지배층 위계질서 확립)
- 공신과 호족세력 제거
- 칭제건원-황제라 칭하고 연호(광덕, 준풍) 사용 ⇒ 왕권강화
- 제위보설치(행려자나 빈민 구호를 위한 기금 마련)
- 거란견제 송나라와 교류
- 교종통합: 화엄종(균여) 중심, 귀법사 창건
- 선종통합: 법안종 중심
경종(975~981)
- 광종의 급진 정책 철회, 공신세력 재중용, 신진세력 제거를 통해 왕권 강화
- 시정 전시과 : 전지(곡물 수취권)와 시지(땔감을 얻을 수 있는 토지)-관등과 인품에 따라 분급
※ 전시과 : 시정전시과(976)-개정전시과(998)-경정전시과(1076)
성종(981~997) - 체제의 기틀마련
- 최승로 시무 28조 의도: 중앙집권강화로 호족억제 및 중앙정치는 귀족중심 정치로 전제왕권 견제
- 제도개편: 2성6부제 {중서문하성(문하시중, 국정총괄), 상서성 / 6부(정책집행)
- 언론 : 대간(낭사, 어사대-관리감찰), 왕권 견제 → 정치운영의 견제와 균형
- 회의기구[도병마사(국방문제), 식목도감(법제, 격식)] → 고려 귀족정치의 특징
- 중추원(군사기밀, 왕명 출납), 삼사(화폐, 곡식의 출납 회계), 재신+추밀(정치운영핵심)
- 지방세력 견제: 고려 최초 지방관 파견(12주 → 12목에만), 절도사 파견, 향리제도(중소호족을 향리로 편제)
- 유교 교육 진흥: 과거제도 정비
- 국자감설치: 태조부터 있던 국학을 정비
- 지방에 향교설치 : 경학박사·의학박사 파견 →지방 호족세력 약화 중앙 집권 강화
- 문신월과법: 관리들의 질 향상
- 학문연구: 비서성(개경), 수서원(서경)
- 거란 1차 침입(993) : 강동6주(서희-외교)
- 위창, 상평창, 분사제도(서경), 건원중보
- 노비환천법
최승로 시무 28조 :
국왕이 백성을 다스림은 집집마다 가서 날마다 일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수령을 나누어 보내어 가서 백성의 이익되는 일과 손해되는 일을 살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태조께서 나라를 통일한 후에 군현에 수령을 두고자 하였으나 대개 초창기임으로 인하여 일이 번거로워 시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 청컨대 외관(外官)을 두소서. 비록 한꺼번에 다 보낼 수는 없더라도 먼저 10여 곳의 주현에 1명의 외관을 두고, 그 아래에 각각 2~3명의 관원을 두어서 백성 다스리는 일을 맡기소서. 중국의 제도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방의 풍습이 각기 그 토성(土性)에 따르게 되니 다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예악(禮樂)ㆍ시서(詩書)의 가르침과 군신ㆍ부자의 도리는 마땅히 중국을 본받아 비루함을 고쳐야 되겠지만 그 밖의 거마(車馬)ㆍ의복의 제도는 우리의 풍속대로 하여 사치함과 검소함을 알맞게 할 것이며 구태여 중국과 같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종(997~1009)
- 개정 전시과(인품을 배제한 18품 전시과)
- 강조의 정변(거란 2차 침입 구실)
현종(1009~1031)
- 거란 2차 침입(1010) : 양규활약
- 경기와 5도(행정적)양계(군사적), 4도호부(군사적 요충지), 8목(행정 중심지)
- 향리 숫자 제한 및 향리 공복 제정
- 군현진 설치를 통해 지방 통치 제도 확립
- 12목(牧)의 절도사 폐지, 5도호와 70도 안무사 폐지
- 도병마사(국방, 군사), 식목도감 설치: 고려의 독자적 제도
- 7대 실록편찬(남아 있지 않음)
- 현화사(부모의 명복을 빌기위해)창건, 연등회, 팔관회 부활
- 주현공거법(향리자제에게 과거 응시 자격 부여): 향리 불만을 잠제우고 민생 안정기여
- 주창수렴법: 의창제 보완(주 단위 창고 설치)
- 면군급고법(노부모가 있으면 군역면제)
- 감목양마법(군마 확보를 위해 말을 기르는 자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지원 하는 규정)
※ 고려 대장경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고려시대 처음으로 목판에 새긴 대장경이란 의미로 거란 침입을 물리치고자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 몽골 침입 때 소실
속대장경: 대각국사 의천이 흥왕사 교장도감에서 조판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몽골 침입시 최우가 강화도에서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조판, 선원사에 보관하다 조선초 해인사로 이전
중기(12C) ; 문벌귀족의 모순=위기
문종(1046~1083)-고려 전성
- 경정 전시과(공음전)
- 사학12도(최충)
- 2성6부
- 의천
- 동서대비원
- 흥왕사(속장경)
- 균여전
- 기인선상
- 서적포
- 주전도감(활구), 삼한통보, 해동통보
- 남경
- 별무반(윤관) 조직하여 전쟁준비 중 사망
예종(1105~1122)
- 여진정벌과 동북9성(윤관)축조, 계속되는 전쟁과 동북9성 반환 요청에 1년만에 환부(이자겸 관여)
- 구제도감(질병환자 치료, 죽은사람 매장하는 일을 하는기관)
- 송나라제도 수용하여 국자감교육을 새롭게 정비: 유학부외 전공별 강좌 7재 설치
- 청연각(경서 강론), 보문각(학사들이 모여 휴식을 하는곳)
인종(1122~1146)
- 14세 나이에 즉위(외조부이자 장인 이자겸이 도움-파격적 우대조치)-4년 후 인종의 측근 김찬, 지녹연 등이 이자겸 세력을 제거하려했으나 이자겸의 사돈인 척준경의 반격으로 실패. 이후 척준경을 설득해 이자겸을 제거하는데 성공. 이후 척준경세력 숙청
- 여진(금)과 사대관계
-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함
- 묘청의 서경반란을 1년여 공방 끝에 평정
- 김부식(개경파)진압으로 원점으로 회귀 - 삼국사기 편찬 " 신채호(조선력사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
- 흉년이 들면 진휼에 힘쓰고 대비원, 제위보를 수리하여 질병을 구제
- 중앙과 지방 학교 제도 개편하여 교육 강화: 제술업, 명경업의 감시에 응시하는 자는 국자감에서 3년간 300일을 출석하여 국자감에서 수학하는것을 의무화 함. 장학재단 양현고 설치
의종(1146~1170) : 무신집권기
정중부(1170~1179)-명종
-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의 난(1173)의종복위
- 서경유수 조위총의 난(1174)
- 공주 명학소 망이·망소이의 난(1176): 신분해방 주장 → 공주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
경대승(1179~1183)-명종
- 도방설치(신변보호위한 사병)
- 전주 관노의 난(1182)
이의민(1183~1196)-명종
- 천민출신
- 김사미·효심의 난(1193)-신라부흥 표방
최충헌(1196~1219) - 신종, 희종, 간종
- 봉사 10조의 사회 개혁책 제시
- 도방부활
- 교정도감 설치(수장: 교정별감)-국정전반 담당
- 만적의 난(1198)-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신분해방운동
- 최광수의 난(1217)-고구려부흥 표방
최우(1219~1249)-고종
- 정방(인사권) 및 서방(문신회유)설치
- 삼별초 조직(좌별초, 우별초, 신의군)
- 강화천도(1232)-팔만대장경 조판 시행
- 이연년의 난(1237)-백제부흥 표방
고종(1213~1259)
- 동국이상국집內 동명왕편(이규보)
- 해동고승전(각훈)
원간섭기(13-14C)문화적 침체기(경천사지10층석탑), 권문세가-원의 앞잡이, 자주성 상실
충렬왕(1274~1308)
- 동녕부, 탐라총관부 회복
- 관제격하(1부4사)
- 삼국유사(일연), 제왕운기(이승휴)
- (도병마사→)도평의사사
- 국자감→국학으로 개칭: 대성전(공자)건축, 안향의 건의로 섬학전 설치
- 섬학전, 경사교수도감
- 순마소(1277)→순군만호부(1300)
- 1278년 충렬왕은 원나라에 들어가서 다루가치 제도의 폐지 약속 이후 완전 철수
충선왕(1308~1313)
- 사림원(개혁기구), 만권당(연구기관)-퇴위 후
- 의렴창(소금, 철 전매)
- 원의 수시력을 채용
- 재상지종(왕실혼인)-15가문
말기(14C)보수∙개혁 갈등기, 신진사대부·신흥무인세력, 홍건적⋅왜구침입, 북진정책
공민왕(1351~1374)
- 반원정책 : 쌍성총관부 회복(철령이북),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몽고풍 금지, 관제복구
- 내정개혁 : 전제개혁(신돈-전민병정도감), 정방폐지, 성균관(유학교육만), 과거제도(신진사대부 등장) 정비
- 복주몽진(홍건적)
- 목화-문익점
- 사략(이제현)
- 최무선(화포통감, 진포싸움)
- 천산대렵도
우왕(1374~1388)
- 직지심경-흥덕사
창왕(1388~1389)
- 대마도 토벌(박위)
공양왕(1389~1392)
- 위화도 회군(이성계)
- 과전법
- 저화(국가에서 발행한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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